<우연처럼> 장목항에서 출발 남해를 톺았다 여정은 포구마다 안부를 묻는 일이었다 무인도를 지날 때면 횃불을 치켜든 저녁노을이 고만고만한 섬들 사이에서 술래잡기를 했다 너를 보낸 후 가슴은 수시로 생각을 후벼팠다 그때마다 남해를 향해, 나는 생각에 불을 지르려 달려 온 것이다 갈매기들도 집으로 돌아가고 인적 끊어진 방파제에 잠시 앉았다가 어슴푸레 낯익은 뒷모습의 그림자 하나 또, 우연처럼 만났다 눈만 뜨면 입술에 달고 살던 그때 그 이름들을, 이젠 남몰래 속으로만 불러 보았다 사무침도 오래 삭히면 발효된 술맛처럼 향기로울 것이다 그런 맛, 다시 한번 음미할 수 있을까 장목항은 오늘도 화염에 휩싸였다 <김환식 작가의 열 번째 시집 ‘맨발의 생각’作>